자연계를 보는 시각에는 벡터(Vector)와 스칼라(Scalar) 라는 구분이 있습니다.

스칼라는 일정 양을 지칭하는 단위로. 온도, 무게, 거리, 시간 등 측정 가능하고 더하거나 뺄 수가 있는 물리량을 뜻합니다.

반면에 벡터는 스칼라 적인 양에 방향을 더한 것으로 변화를 표시하지요. 따라서 벡터에는 반드시 그 크기가 작용하는 점 그리고 방향이 포함됩니다.

벡터량에 대한 덧셈 뺄셈은 방향성이 포함되어 좀 복잡하니 오늘은 물리 내용보다는 이러한 벡터와 스칼라적 구분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조직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다양한 조직이 있습니다.

기업에서 생산과 영업을 맡은 경영 조직이 있고 정부가 주관하는 공공 서비스 조직이 있으며 사회단체 및 동아리 등 다양한 모임이 있게 됩니다. 이런 조직들을 보면서 가끔 느끼게 되는 것은 그 조직의 운영 방식에 따라 성과와 조직원들의 만족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조직의 목적이 분명하고 조직원들이 방향성이 일관되게 일치하면 그 조직의 조직원들은 만족하고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런 조직을 대체로 벡타 적인 조직으로 구분 지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겉으로는 일상적인 만남으로 보이지만 목적도 불분명하고 서로 다른 관점이 산만하게 모이게 되면 조직 구성원의 만족도도 떨어지고 주변의 평가도 낮아지게 됩니다.

이런 조직들은 자연 조직의 방향성이나 추진이 선명하지 못하고 잡음이 생기거나 내부 불협화음이 생기곤 하지요. 당연히 조직의 발전 가능성은 떨어지고 맙니다.

이런 조직들은 대체로 목적이나 방향성보다는 그저 일상적인 만남에 치중하면서 벡터보다는 스칼라적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사실 벡터 적이냐? 스칼라 적이냐? 로 시비가 붙어도 무엇이 좋다 아니다 로 구분 짓기는 어렵습니다. 조직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무슨 활동을 하기 위해 모이는 조직이라면 해야 할 일 즉 목표가 분명하니 벡터적으로 운영해야 성과를 내게 됩니다.

누구나 조직내에서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보통은 부지불식간에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그래서 굳이 문제를 들추어 얘기하기 보다는 그냥 눈감거나 덮어두고 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벡터적으로 방향성을 정립하기 보다는 스칼라적 관행에 묻혀 버리는 경우가 생기지요. 이런 조직일수록 개인간 적당한 거리두기가 생기게 됩니다

반면에 모두가 다양한 개성을 지니고 자기 주장이 강하면 그 조직은 힘을 모으기 보다는 와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지 않던가요?

구성원 각자가 서로 다른 벡터를 강하게 주장하면 역시나 문제는 커집니다.

이러한 방향성 즉 강력한 벡터 적 요소가 없어도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주어진 대로 하는 조직도 생각보다 흔합니다. 대부분 스칼라적으로 움직이지만 사실 많은 조직들이 이러한 형태를 지닙니다.

기업에서도 상품 매출이나 신제품 전략, 재무 전략 등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온갖 지혜와 힘을 모으는 부서가 있는가 하면 시계추처럼 시간표에 맞춰 일상이 스칼라적으로 진행되는 조직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좋다 나쁘다거나 우열의 개념이 아니라 그 조직이 속한 개개인의 역할분담이 다르다고 봐야 됩니다. 이는 마치 앞에서 끄는 기관차와 뒤에 따라가는 객차의 역할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기관차는 다분히 벡터 적이고 객차는 스칼라 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관차 하나에 10량 이상의 객차가 달려 가듯이 사회 조직도 벡터 적인 조직보다는 스칼라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이 훨씬 더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지하철을 보면 연결된 전동 차들이 각각의 전동 모터를 같고 힘을 분산시켜서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모두가 기관차 역할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훨씬 효율적이지요.

만일 모든 열차가 벡터적으로 움직이면서 동일한 방향성을 지닌다면 그 위상은 승수에 비례해서 커질 것입니다.

개인

우리의 삶도 벡터 적인 것과 스칼라 적인 것으로 구분 지어 보입니다.

입시를 목표에 두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오로지 입시 전략에 맞춰 공부에 올인 한다면 그 삶은 지극히 벡터 적인 것입니다. 꾸준히 유지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효과가 좋게 나오지요. 그러나 가끔은 탁 트인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바다를 쳐다보거나 호수를 내려다보는 물 멍이 요새 인기라고 합니다. 스칼라 적이지만 힐링에 도움이 되고 마음이 편안 해집니다.

개인간의 만남에서도 자기 주장이 강하여 남들에게 강요하면서 불협화음이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인 의견을 피력하는 선을 넘어 상대가 자기 의견을 동조하게 하거나 상대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주장만 펴면서 대화가 불편해지고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있지요. 특히 요즘처럼 비대면 격리로 사회적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대선 정국에 온갖 주장이 난무하면서 일방적 주장들은 하나같이 불편해집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자기 주장을 펴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듣고 그대로 따라주는 데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가정이나 사회의 평화가 유지되는 데에는 이러한 상호 이해와 협조 및 화해와 일치가 큰 몫을 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비전을 설정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서 필요한 과정을 정리해서 계획을 세우면 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따르게 됩니다. 전형적인 벡터적 추진력이지요.

중간중간 힘든 시간이 있겠지만 방향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고 방향을 잡아 노력을 기울여 성과를 얻게 됩니다.

힘들 때마다 제대로 방향이 맞는지? 그리고 필요한 힘을 제때에 내고 있는지? 이런 식의 방향 조정이 흔들림 없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크게 힘을 발휘합니다

반면에 바람 불어 흔들리는 대로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나면 목표는 실종되고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방향성이 없으니 일상의 평안함이나 즐거움 즉 스칼라 적인 양에 만족하고 말게 됩니다. 여전히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의 판단은 어려워 보입니다.

외모 지상주의

우리 사회가 점차 내실보다는 외적인 일에 휩쓸려 가기 시작하는 듯해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외모지상주의가 사회 곳곳에 만연합니다. 청소년들은 물론 중년층도 자기 내실보다는 남의 시야에 더 예민합니다.

자연 옷이나 신발, 가방 등 악세사리부터 헤어스타일, 집, 차 등에 값비싼 지출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을 부추기듯 은행이나 공공장소에 호텔에서나 보던 럭셔리 잡지가 꽂히기 시작하고 일간신문에 값비싼 명품 시계광고가 자주 보이기 시작합니다.

구매층도 넓어질뿐더러 세간의 관심을 끈다는 뜻이겠지요. 집은 월세 단칸방이라도 차는 고급 외제차를 타야 한다는 색다른 개성도 낯설지 않습니다. 집은 남에게 보여줄 일이 별로 없지만 차는 남 앞에 보이는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겠지요.

어쩌면 이것은 디지털 사회의 필연적인 부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과거처럼 시간을 갖고 반추하고 생각하고 많은 만남을 통해서 겪은 경험이 녹아내리는 과정은 더이상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워낙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고 수많은 정보와 만남이 계속 물밀듯이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제는 처음 보는 순간 0.5초 안에 재미와 환상 자극적인 외모 색다른 주제로 시선을 잡아야 되고 그것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자기 주장을 상대가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SNS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안에 수많은 동영상 중에서 자신의 것을 보게 만들고 좋아하는 구독자를 늘리려면 자연 찌라시 성 비방이나 근거 없는 자극적인 이야기들도 여과없이 올리게 됩니다.

'내로남불'인 경우도 있고 '아니면 말고' 식 흥미위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외모지상주의는 청소년들에게 많은 부담을 줍니다.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는 공정한 절차나 과정이 무시되기 때문에 첫눈에 인정받으려면 트렌드를 따라서 외모를 꾸밀 수밖에 없습니다.

인기있는 브랜드 옷을 비싼 값에 걸쳐야 하고, 전자기기도 남들이 선호하는 값비싼 제품으로 장식을 하고 꾸며야 됩니다. 신발도 눈에 잘 뛰는 부분이니 비싸더라도 유명한 신발을 고르게 되고는 멀쩡한데 도 트렌드에 뒤 쳐진다고 생각되면 또 바꿔야 됩니다.

이런 빠른 소비는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과소비로 이어지면서 부모의 속은 타고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은 커집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지요. 지하철에서 가끔 앞머리를 말아 올리고 거울을 보며 열심히 아름다움을 꾸미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상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그런 과정을 대중 앞에서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쳐다보면 자칫 희롱이 되기 쉽고 안 쳐다보면 무시한다고 또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눈 둘 데가 없으니 결국 각자 자기 휴대 폰을 들여다보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더 재미있거든요. 안전하기도 하고요.

외모 꾸미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눈, 코, 입을 다듬고 체형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운동으로 근육을 만들지 않고 페인트 그리는 느낌이 듭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몸매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줄기세포와 첨단 바이오 의약품을 먹어서 맞추려고 합니다. 힘들게 노력하기 보다는 저절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대가 높아집니다.

대부분 꾸준히 노력하고 참고 인내하는데 익숙하지 못합니다.  먹고 바로 효과가 나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일정한 목표를 갖고 노력하는 벡터 적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과에 치중하면서 단편적인 량 즉 스칼라적 요소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커뮤니티

디지털이 발달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글이나 어디서 재미있다고 생각된 사진이나 동영상을 적극적으로 올립니다. 그것을 보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순수한 동기도 있겠지요.

덕분에 휴대폰은 끊임없이 카톡거리며 소음을 쏟아 냅니다. 일종의 소음공해에 주변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립니다.

대선이 가까워 오면서 자기 정치 철학을 강요하거나 특정 후보를 비방 또는 동조를 요구하는 일방적 메시지들이 횡행합니다. 늘상 그렇듯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별로 환영 받지 못하지요. 그것은 개개인의 벡터 즉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기와 다른 방향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불편해합니다. 또 누구나 상대가 자기와 같은 방향성을 갖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말하고는 싶어도 듣기는 싫은 이중성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자연 커뮤니티 동아리에서도 기본적인 에티켓이 공론화되기 시작합니다. 사회 발전을 위한 제언이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글들은 벡터 적이지만 환영을 받겠지요. 

그러나 일방적 자기 주장만 강하게 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불편함에 귀를 닫고 sns 는 바로 삭제되면서, 단절과 차단이 이어집니다. 올바른 인간관계는 상대에 대한 배려 즉 역지사지 심정으로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상대 입장에서의 고려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말했다는 스칼라 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상대가 어떻게 받이들인가를 고려하는 벡터 적 에티켓이 필요해 보입니다.

성경에 나오듯 내가 받고 싶은 그대로 남에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사회생활 대인관계에 황금률이 아니겠습니까?

공공 서비스

베트남에서 오래 머물다 귀국해 보니 주민센터나 공공기관의 대민 서비스가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우선 건물도 많이 커졌고 곳곳에 인원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당연히 서비스 질도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민원인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어느 기관에 민원 차 방문하니 예전에는 한곳에서 다 처리되었는데 지금은 일이 분산이 되었더군요.

1층에 어느 창구로 가라고 해서 가보니 일부 업무는 2층 또 다른 창구로 가라고 합니다. 2층 창구에서도 다 마치지 못하고 일부는 아래층 다른 창구를 안내합니다.

사람들을 잔뜩 뽑아 놓고 억지로 일을 분산시킨 듯싶어 짜증이 솟구칩니다. 왜 원스톱 서비스가 안 되는지 이해가 안되면서 혹시 이 조직이 벡터 적인 방향성을 상실에서 스칼라적으로만 움직이고 있지 않는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보니 그들도 걱정스런 눈빛으로 봅니다. 왜 안 가나 하고 말이지요.

인원을 늘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대민 서비스 질을 높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하겠지요. 일자리 창출이라는 단편적이고 스칼라 적인 한계가 민원인의 불편만 초래합니다. 점심시간에 당혹스러움은 은행에서도 이어집니다

은행은 본래 '갑'이라고 인식되어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장 앞선 서비스 조직이니 다르려니 싶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일반 직장인들은 근무시간 중에 개인적인 일을 볼 수 없으니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은행 업무나 관청 일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관청이나 은행은 점심시간엔 서비스 인원을 대폭 줄어버렸습니다.

심지어는 12시부터 2시까지는 점심 시간이라고 문을 닫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면 직장인들은 언제 어떻게 업무를 봐야 될까요? 고객 서비스 질이 떨어진 것에 대한 강한 불만이 자꾸 쌓이게 됩니다.

몇 년 전 벨기에 공항에 입국할 때 당혹스러운 상황이 생각납니다. 30년 전 벨기에를 방문했을 때 역동적이고 비즈니스 적인 움직임과 시스템에 강한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즈니스 코트를 입고 가방을 들고 바쁘게 걸어 다니고 그 모습이 대부분 세련 돼 보이는데 상당히 효율적이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요구해도 항상 요구하는 사람이 입장을 헤아려서 답이 나오니 대화도 편안하고 업무도 순탄하게 잘 이루어져 좋은 인상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아 이래서 UN이나 국제기구들이 벨기에 많이 들어와 있구나! 벨기에가 유럽에서 그래도 가장 앞서 가는구나!" 하는 인상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완전히 바뀌어 있더군요.

비행기가 도착하니 200명 넘는 사람들이 입국 수속을 하러 밀려들었습니다. 입국장은 EU회원용과 비회원용 두 군데로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EU Pass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따로 줄을 서는데 EU회원 서비스 창구에는 무려 네 명이나 앉아 있는데 출입국 사람들이 별로 없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EU 비회원줄에는 서비스 창구가 하나로 자연 줄이 길어지기 시작했지요.

저는 입국하면 바로 기차를 연결해서 또 이동해야 되는 연결 패스를 구입했기 때문에 그 기차를 꼭 타야만 했고 놓치면 다음 비행기까지 모든 일정이 취소될 수도 있는 나름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동방예의지국 답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지만 30 분이 지나도 줄은 줄어 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뒤로 다음 비행기가 도착하면서 금새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입국 수속은 여전히 한 명 뿐입니다.

그 사람이 좀더 빠르게 도장을 찍어 주기를 기대했지만 갑자기 업무를 멈추더니 박스 문을 열고 나갑니다. 교체 시간인가 싶었더니 아닙니다. 곧 뒤에 가서 담배를 피더군요. 쉬는 시간이랍니다.

45분 일하고 15분 쉬는 룰을 지키는 동안에도 또 다른 비행기가 도착해서 사람들을 쏟아 냅니다. 견디다 못해 안내원한테 상황을 설명하고 EU Pass 쪽으로 가겠다고 했지만 정중히 거절당합니다. 로컬 룰을 지키라는 것이지요. 

꼼짝없이 2시간 넘게 기다려서 겨우 스탬프를 받고 나니 기차는 이미 떠났고 다음 일정은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30년을 간직한 벨기에에 대한 비즈니스 적인 환상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서구 사회가 개인화되면서 특히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의 문제점을 여실히 느꼈지만 귀국하고 보니 우리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이 모든 일을 목적과 상대를 고려해서 벡터적으로 처리할 것인지? 스칼라 적으로 처리하고 말 것인지의 차이로 느껴집니다.

벡터적으로 추진하면 목적과 효용성, 상대 즉 고객에 대한 배려가 분명해야 되지만 스칼라적으로는 일을 위한 일이 되거나 남 보여주기 식 진행으로 고객의 불만을 자아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경제

그럼 경제는 과연 벡터적 접근과 스칼라 차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최근 회사 자금을 횡령해서 주식이나 다른 개인적 일탈로 빚어지는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옵니다. 그것도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간지기인 재무 팀의 핵심 멤버가 그런 일들을 하더군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되고 말았네요.

이 역시 벡터 적인 인식이 전혀 없이 오로지 스칼라 적인 돈의 절대량에만 치중한 결과입니다. 당사자들은 워낙 큰돈이니 어쩌면 설령 들통이 나서 감옥에 갔다 와도 남은 여생은 남부럽지 않게 마음대로 실컷 돈을 쓸 수 있지 않는가 하고 기대할 지도 모릅니다.

기본적인 도덕과 사회 윤리관이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전에는 '다같이 잘 살아 보세!' 였지만 지금은 '너는 모르겠고 나만 잘 살자' 식 각자도생이 보편화 된다고 합니다.

이런 기업들의 부침도 벡터와 스칼라 직인 구분에서 다루어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 비대면 시대에 새로운 트렌드가 집콕, 개인화, 재택근무 등으로 필연적으로 디지털이 선행되어야 됩니다.

당연히 디지털 관련 업종들이 성장하게 있지요. 그동안 디지털 경제에 핵심이 되었던 FAANG 대신 MANTA가 뜨고 있다고 합니다.

F페이스북, A아마존, A애플, N넷플릭스, G구글은 최근엔 페이스북이 메타로 바꾸면서 한없이 추락하고 있고 넷플릭스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합니다.

대신 GPU그래픽 카드로 전세계를 휘어 잡는 엔비디아가 뜨고 전기차에 이어 우주 관광시대를 열어가는 테슬라, 클라우드와 게임으로 다시 왕좌를 노리는 MS가 뜨면서 알파벳으로 이름을 바꾼 구글을 포함해 MANTA가 시대를 선도한다고 합니다. . 

이런 기업들의 부침을 보면서 방향성을 올바로 잡지 않으면 세계적인 기업도 한순간에 곤두박질 치는 섬뜩함을 느끼게됩니다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각오로 사명까지 메타로 바꾼 것은 신선했으나 타이밍이 아직은 아닌 듯 싶어 보입니다. 벡터에서 작용점은 시간에 따라 효율이 달라지지요.

반면에 아마존은 우주 시대를 열면서 고객이 필요로하고 기업이 나아가야 될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한 가장 모범적인 벡터적기업으로 보여집니다. 코로나로 대부분의 유통이 위축됐을 때 오히려 성장을 하고 있지요. 성장에 주 모멘텀은 유통이 아니고 데이터 저장 클라우드 서비스였다고 하는 것도 역시 적절한 방향성 선택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떨까요? 여전히 회장님 하면은 중세시대 봉건 군주 보다 더한 파워를 지니고 생사여탈권을 휘두르는 그런 기업들은 이제 점점 사라져 가기 시작합니다. 방향성 없이 스칼라 적인 양적 성장만 고집합니다.

그런 기업들일수록 회사를 자랑할 때 매출 규모로 이야기를 합니다. 스칼라 크다고 자랑합니다.

반면에 세계적 우량기업들은 스칼라 양을 자랑하지 않지요. 사회발전을 위해 무엇을 기여했고 수익률이 얼마 고 이런 식의 벡터 적 방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자연이 성장과 수익이 따라갑니다

디지털 시대

디지털 시대의 메타버스가 화두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립니다

이제는 가상현실 증강현실에 인공지능이 합쳐져서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익숙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혼란과 위협이 되지만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는 공전의 기회가 다가옵니다.

이런 메타버스 세상에서도 벡터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과 가상 세계 구분이 모호해지고 가상 세계에서 붙잡혀 있으면서 현실 세계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져서 커뮤니티에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종일 총을 쏘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게임에 중독된 사람은 현실로 돌아와도 그 여운이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손에 총이 있다면 가상현실과 현실 사이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큰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던 가요?

메타버스는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오는 지구라는 환경에서 화성이니 우주여행이니 하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공간의 무한한 확장성이 메타버스의 큰 장점이자 기회입니다만 그러나 이것은 철저하게 현실에 바탕을 두고 확장성을 활용해야 되는 방향성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벡터에서 중요한 요소는 힘이 작용하는 작용점, 방향, 그리고 힘의 크기 3가지입니다. 작용점은 가상현실의 뜬구름이 아닌 우리가 생활하는 현실에 분명히 기초해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방향성은 인류의 복지 증진, 생활개선, 오감이 즐거운 새로운 세상 등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녹으로 확실하게 방향 감각을 유지해야 합니다. 크기는 각자가 기여할 몫입니다.

이렇게 벡터 적인 관점 없이 스칼라 양만 강조하게 되면 현실인지 가상 인지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기본적인 인간 관계가 붕괴되면서 사회성에 많은 장애를 주게 됩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서 벡터의 중요성은 더 없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주요 경력 :

(현재) 베트남 국립경제대학교 (NEU) 방문 교수

- 베트남 FPT 대학원 MBA 교수

- 한국 산업정책연구원 (IPS) 교수

- Campus-K, 하노이 공유 오피스 공동창업

- KOICA 자문관, Global CEO Academy 주임 교수

- GE Energy Asia Pacific Senior Sourcing Leader 

- CCI (Global 기업) 한국 대표 – 기술영업으로 성장 수익 달성

- 한국철강 단조 및 에너지 본부장 – 사업부 영업부문 총괄 전무

- LS전선(현대양행, 한국중공업) 농기계사업부 창설

- 성신여자대학교 경영학과 (8년 강의)

교육 훈련 및 자격증: 

- FTA 관리사 겸 경영컨설턴트 (산업자원통상부 주관)

- 경영지도사 (마케팅)

- 4T CEO 녹색전문경영과정 이수

- 한국경영 3.0 CEO 과정 이수

- aSSIST 경영학 박사

- CPSM(국제구매조달전문가) 자격 인증 (ISM주관)

- 뉴욕주립대 Stony Brook 졸업 (기술경영 석사)

-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공학과 졸업 (학사 / 기계전공)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sephyglee1(인터넷 창에 "이영기.블로그.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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