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북부지방 박닝성 옌퐁(Yên Phong)縣은 하노이와 35㎞, 노이바이 국제공항과는 22㎞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삼성전자가 이곳에 세워진 것은 무엇보다도 수도와 가깝고 공항과 가까운 교통의 입지조건 때문일 것이다.
어느덧 옌퐁은 베트남 산업단지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옌퐁을 중심으로 좁게는 박닝성, 넓게는 박장성, 그리고 빙푹성, 타이응웬성, 멀리는 하이퐁까지 북베트남 산업벨트로 확장되어 나가고 있다.
이 베트남 산업의 중심지인 옌퐁에 대해 소상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는 것 같다.
옌퐁을 이야기 하기 전에 박닝은 한 때 북베트남의 수부(首部)였다. 한(漢)나라가 북베트남을 지배했을 때 박닝은 수도 역할을 한 곳이다.
옌퐁은 독립 후 중국군대가 베트남을 침공할 때 수도 탕롱(Thang Long)하노이를 점령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이었다. 옌퐁 앞에는 느 응웻(Như Nguyệt)강이 흐르고 있다. 적이 이 강을 건너면 옌퐁은 사수해야 할 최후의 방어선이 된다.
옌퐁이 무너지면 수도 하노이가 함락됨으로 북방에서 적이 쳐내려 올 때마다 국가적 운명의 위기감이 감돌았던 곳이 바로 '옌퐁'이었다.
한때 송군(宋軍)이 밀고 내려왔을 때(AD 1077) 흥미로운 일화가 이 옌퐁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때도 송군이 느 응웻강 건너 편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베트남은 3만명의 적을 막아내어야 하는 힘겨운 싸움 앞에 놓여있었다. 이때 베트남에 리 트엉 끼엣(Lý Thường Kiệt, 李常傑)이라는 오늘날로 말하면 현대에 프랑스와 미군을 물리친 유명한 보 응웬 잡과 같은 장군이 전쟁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한자로 된 시문을 써서 적장에게 쏘아 보냈다. 이 시문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남국산하』이다.
南國山河南帝倨(남국산하남제거) 남국의 산하에는 남쪽황제가 거하노라.
截然定分在天書(절연정분재천서) 하늘의 책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如何逆路來侵犯(여하역로래침범) 어찌, 너희 역로가 감히 우릴 침범하는고
汝等行看取敗虛(여등행간취패허) 너희는 기필코 패배를 맛보고야 말리라.
송군은 생각하기를 천하에 황제는 중국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 남쪽의 베트남이라는 나라에도 황제가 있다고?"
리 트엉 끼엣 장군이 노린 것은 적의 사기를 저하시키기 위한 심리전술이었다. 이 남국산하의 시문을 통해 중국의 송군을 물리친 리 트엉 끼엣 장군은 베트남인의 영혼속에 살아 일약 불멸의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이 시문은 베트남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있고 학생들은 다 암송하고 있다.
옌퐁은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중국과 대등하다는 민족의 자주독립의식을 고양시킨 곳이다. 자연히 전쟁에 공헌을 세운 인물들이 이곳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이씨조선과 비슷하게 베트남에 레왕조(AD 1428)가 들어선 후, 유교가 국가의 이념으로 자리잡으면서 400년 동안 136번의 과시(科試)가 시행되었다.
이때 왕 앞에서 직접 보는 정시가 30번이나 이곳 옌퐁에서 열렸다. 그래서인지 옌퐁에서만 장원(壯元)이 1명. 진사(進士)가 무려 47명이나 배출되었다. 이만하면 박닝성 옌퐁은 문물을 겸비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1980년 베트남 문화부는 송군과의 전쟁에서 느 응웻 강변 방어진지 8곳을 선정, 베트남국가의 역사유적지로 결정했다. 놀라운 것은 이 가운데 6군데가 모두 삼성전자가 있는 옌퐁縣에 속해 있다.
베트남 산업의 메카 옌퐁과 그 주변이 지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몹시 곤경에 처해 있다.
베트남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15일동안 한국기업의 직원들이 하노이로 돌아오지 못한 채 회사의 규모에 따라 어떤 회사는 수만명, 어떤 회사는 수천명, 어떤 회사는 수백명의 베트남근로자들과 함께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채 생산시설에서 텐트를 치고 격리근무를 하고 있다. 말이 격리근무이지 사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코로나19 적의 침투로 북부 산업벨트가 흔들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북방중국이 남하할 때 마다 박닝성 옌퐁은 최후의 방어선(防禦線)이었다. 이제는 우리의 산업전사(戰士)들이 역사에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