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민족 국가 베트남, "왕의 법이 마을의 법에 진다"지만 위기 때는 모든 국민 대단결

△ 호찌민 영묘 / 사진=Jorge Cancela 

코로나 종식을 앞두고 있는 베트남, 확진자 332명, 완치자 317명, 아직 치료중인 자가 9명이다. 확진자 332명 중에 국내 확진자는 130명이고, 해외유입 확진자가 192명이다.

베트남은 코로나가 중국 우환에서 발생하자마자 중국 국경을 봉쇄했다. 베트남과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육로로 왕래하는 지형이다.

한반도 길이보다 긴 1,449km의 국경이 중국과 맞닿아 있다. 북부 라오까이는 200m 다리 하나만 건너면 중국이다. 랑선에서도 버스타고 중국 국경을 넘을 수 있다.

그 외에도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수많은 통로와 샛길들, 한국은 비행기 운항만 금지시키면 중국을 막을 수 있지만 베트남은 육로로 오가는 국경이어서 국경봉쇄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중국 국경 봉쇄에 성공을 했다.

베트남의 북부 랑선, 라오까이는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지방이다. 이들의 의식이 그리 높지 않은데 어떻게 수시로 들락날락하던 중국을 왕래하지 못하게 했을까?

베트남은 가능하다.

베트남의 마을은 소국가이다. 그래서 내부 결속력이 뛰어나다. 중앙정부의 목표가 공공의 선을 위한 것이면 소국가의 마을들이 적극적으로 대의에 합류한다. 그것이 곧 자신의 마을, 즉 자신의 소국가를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이런 소국가(마을단위)가 뭉쳐서 만들어진 나라이다. 그래서 '왕의 법이 마을의 법에 지는 상황'이 왕왕 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는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왕의 법을 잘 준수했다.

베트남은 다민족 국가이다. 주종족인 낑(Kinh,京)족을 포함하여 54개의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이다.  언어도 다르고, 풍속도 다르다. 마치 다른 나라 같다. 그래서 하나로 결속되는 것은 쉽지 않다.

사파에 가면 작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타이족과 사뽀족이 거주한다. 그러나 이들은 완전히 다른 나라이다. 말도 다르고, 전통 옷도 다르고, 문명의 수준도 다르다.

마치 구석기 시대와 농경시대의 차이랄까, 이 작은 언덕을 두고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문명이 이 작은 언덕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서로 통혼도 하지 않는다. 베트남은 이렇게 소수민족이 작은 촌락 속에서 자기 민족의 고유성을 유지하며 외부와의 동화를 거부하고 살고 있는 작은 집단이 모여서 이루어진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전 국민이 하나로 결속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호찌민 주석이 이 일을 해냈다. 호주석은 1945년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북부산지의 6개 성(하장, 랑선, 박칸, 까오방, 타이응웬, 뚜엔꽝)을 근거지로 삼아 8월 대혁명을 일으키면서 중부 남부를 포함한 민족 대단결을 이끌어냈고 결국 성공했다.

이 대단결의 기저에는 소수민족이 있었기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 지난 3월 28일 베트남 최대의 병원인 바익 마이 종합병원에서 화학군이 동원돼 긴급 방역 및 멸균소독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사진=Truy?n Hình Pháp Lu?t

베트남에서도 코로나 대확산의 위기가 있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바익 마이(Bach Mai) 대형 종합병원 간호사와 직원이 확진자였다.

바익 마이 병원은 전국에서 하루에도 수 백명이 다녀가는 병원이고 입원환자만 4천명이 넘는 병원이다. 온 나라가 비상이 걸렸다.

바익 마이 병원을 다녀간 4만명 이상이 검사를 받았고, 하노이 시장은 해외전문가의 견해를 인용하며 베트남이 한국의 대구보다 중국의 우한보다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베트남은 곧바로 봉쇄에 들어갔다, 약 한 달간을 모든 회사와 식당, 백화점, 가게들이 문을 닫았으며 생존에 필수적인 식품가게와 약국, 병원만 문을 열었다.

지방성도 봉쇄에 들어갔다. 자기 지방에 있던 사람이 다른 지방에 갔다 오면 무조건 14일 격리에 들어갔다. 이렇게 하여 대확산의 위기를 넘겼다.

한 달이라는 짧지 않은 봉쇄의 기간을 온 국민이 힘을 합하여 잘 따라주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일용직들을 위하여 민간에서 쌀을 무료로 배급했다. 이름 하여 'ATM 가오gao(쌀)' 이다.

커다란 물탱크를 개조하여 버튼만 누르면 일정량의 쌀이 나오도록 했다. 그래서 ATM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버튼을 누르면 돈이 나오는 ATM 기계의 성질을 인용하여 ‘ATM 가오Gao’ 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또 민간에서 빵을 만들어서 나누어 주었다. 누구든지 배고픈 사람은 줄을 서서 빵을 탈 수 있었고, 쌀을 배급 받을 수 있었다.

그 다음에 나온 것이 '0달러 마트', 누구든지 이 마트에 와서 베트남 돈으로 10만동, 우리나라 돈으로 5천원 상당의 물건을 가져갈 수 있도록 생필품을 진열해 놓았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한 아파트의 베란다에 베트남 국기인 금성기가 달렸다. 국경일이 아닌데 느닷없이 나타난 금성기, 그것은 코로나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퍼포먼스였다.

이런 열화같은 국민들의 성원에 코로나도 기승을 부리지 못하고 주저앉은 것 같다. 4월16일부터 지금까지 두 달 보름동안 코로나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베트남에는 9명의 확진자가 남았는데, 그 중에 제일 위험한 사람이 베트남 항공기의 조종사였던 영국인 S.C (43세)이다.

이 사람은 3월18일에 발병이 되어 병원에 입원했으나 그의 폐는 이미 90 %가 비활동적이었며 40일 동안 ECMO 사용 및 혈액 투석을 했다. 

이 과정이 베트남 언론에 보도가 되면서 온 국민은 영국 항공기 조종사 살리기에 메달렸다. 5월15일 의료진이 폐 이식 결정을 하자 베트남 국민들은 자기의 폐를 기증하겠다고 40명이나 지원을 했다.

심지어 해외에 있는 사람까지 기증의 의사를 밝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을 사랑해서? 아니다. 자신들의 조국 베트남을 한 명의 사망자도 없는 명예로운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베트남의 단결성이다. 평소에는 지방성마다, 현(縣)마다(군단위), 마을마다 ‘따로 왕국’으로 지내다가 대의를 위해 ‘하나의 왕국’으로 뭉치는 나라, 평상시에는 독자적인 낱개의 개체들이 위기 시에는 한데 모여서 강하고 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나라, 이것이 베트남의 특이한 공동 결속성이다.

‘왕의 법이 마을의 법에 진다’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면서도 대의명분이 있을 때는 순간에 대동단결하여 기적을 만들어내는 나라, 이것이 베트남이다.

김영신 한베문화교류센터 원장, 한베다문화가족 연구소장, 전 하노이 대학교 한국문학 강사, <갈대와 강철같은 두얼굴의 베트남>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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