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웬 쑤언 푹(Nguyễn Xuân Phúc) 베트남 국가주석은 최근 3박 4일 일정으로 쿠바를 방문한데 이어서 4박 5일 일정으로 미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했다.

특히 이번 푹 주석의 쿠바 방문은 작년 초,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한 외국 정상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쿠바는 베트남을 위해 피를 기부하겠소" 

피델 카스트로는 1973년 9월, 화염과 폭탄이 쏟아지는 베트남 중부 꽝찌(Quảng Trị)성을 방문해 장병과 악수하고 있는 모습/출처=베트남통신(TTXVN)
피델 카스트로는 1973년 9월, 화염과 폭탄이 쏟아지는 베트남 중부 꽝찌(Quảng Trị)성을 방문해 장병과 악수하고 있는 모습/출처=베트남통신(TTXVN)

현대사에 베트남과 쿠바의 관계만큼 특별한 관계는 찾아보기 드물다. 이 특별한 관계는 그냥 형성된 것이 아니고 피델 카스트로가 적극적인 구애 작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베트남과 관계를 맺은 구 소련이나 중국, 그리고 주변의 동남아 나라들과는 달리 두 나라의 관계는 국제관계 속에서 유불리(有不利)를 떠나 한결같이 변함없는 지독한 유대감을 유지해 오고 있다. 거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특히 카스트로의 베트남에 대한 애착은 그가 한 말에서 잘 나타나 있다. “쿠바는 베트남을 위해서라면 피흘리기까지 희생할 할 준비가 되어 있소(Vì Việt Nam, Cuba sẵn sàng hiến dâng cả máu của mình)”라고 했고, “쿠바는 호찌민 주석이 희망했던 것보다 10배나 더 크고 아름다운 베트남 재건을 위해 기꺼이 땀을 흘릴 용의가 있소(Trong hòa bình, Cuba sẵn sàng đổ mồ hôi để góp phần xây dựng lại Việt Nam mười lần to đẹp hơn như Chủ tịch Hồ Chí Minh hằng mong muốn)”라고 했다.

그가 한 말들은 베트남인의 가슴속에 불후의 명언으로 남아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베트남이 가장 어려울 때,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할 시기에 쿠바가 손을 내밀어 주었기 때문이다.  

카스트로의 베트남에 대한 사랑의 표현에 호찌민 주석은 "베트남과 쿠바는 수만리 떨어져 있지만 두 나라 인민의 마음은 한 집안의 형제처럼 가깝습니다(Việt Nam và Cuba cách xa nhau hàng vạn dặm nhưng lòng dân hai nước gần gũi như anh em một nhà)”라고 화답했다. 

1950년대에 베트남에서 호찌민 국가주석이 디엔비엔푸 전투의 승전보를 온 세계에 울려 퍼뜨렸을 때 쿠바에서는 혁명가인 피델 카스트로가 풀겐시오 바티스타의 군부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정치적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두 나라는 자유ㆍ독립ㆍ민족해방이라는 이상(理想)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쿠바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 수교(1960.12.2)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이후로 쿠바는 역사의 질풍노도, 지리적으로 먼 거리 등 어려운 난관들을 극복하고 베트남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미국의 압박에도 변함없이 베트남을 지지한 쿠바 

1960년대 미국이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인 이후, 쿠바의 집요한 반대로 미국과 여러 나라들이 쿠바와 수교를 단절하고 무역 금수 조치를 취했지만 쿠바는 이에 굴하지 않고 베트남을 지지하는 국제 운동에 앞장서 왔다. 

카스트로는 'All for Vietnam' 즉 '베트남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라는 슬로건으로 그의 직접적인 지도하에 각종 회의와 세미나, 회담 및 대회를 통해 베트남에 대해 배우면서 대학과 기관, 기업 및 군대에 베트남에 대한 특수 연구 그룹을 설립해 親베트남 운동을 쿠바 전역으로 확대시켰다.

당시 쿠바 라디오는 영어 방송 전용 채널을 개설해 미국 국민들에게 베트남 상황과 베트남 국민들의 저항의지를 소개하면서 전쟁 종식을 위해 진보적인 미국 여론을 이용했다.  

카스트로는 해외순방을 '월남전 종식 캠페인'으로 활용하며 베트남을 지지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수많은 환영 인파가 양국 국기를 흔들며 피델 카스트로의 베트남 방문을 축하하고 있다/출처=상동
수많은 환영 인파가 양국 국기를 흔들며 피델 카스트로의 베트남 방문을 축하하고 있다/출처=상동

1973년 9월 그는 화염과 폭탄이 쏟아지는 베트남 중부 꽝찌(Quảng Trị)성을 방문함으로써 외국 지도자로서 목숨을 건 최초이자 유일한 전쟁터 방문 외국 국가 원수로 기록되었다.

베트남 정부는 카스트로의 꽝찌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쿠바의 고위급 대표단을 초청하고 있다. 베트남은 카스트로 서거 2년 후 2018년 9월에는 꽝찌성 방문 45주년을 맞아 그를 위해 카스트로의 이름을 딴 '카스트로 공원'을 조성하고 동상을 세웠다.

2018년 9월, 베트남 중부 지방 꽝찌성에 열린 '카스트로 동상 제막식'/출처=VTV  
2018년 9월, 베트남 중부 지방 꽝찌성에 열린 '카스트로 동상 제막식'/출처=VTV  

카스트로의 장례식을 국가애도일로 선포..."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베트남이 카스트로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1961년에 쿠바 사회주의공화국을 세운 그해에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월남의 친미 지엠Ngô Đình Diệm정권 타도를 위해 남부의 공산당 게릴라 세력이 결성한 단체)’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정한 외국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트남은 카스트로의 장례식 날을 국가애도일로 선포할 정도로 카스트로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카스트로의 꽝찌 방문기간 동안 그는 "쿠바는 베트남을 위해 피를 기부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 했다. 그리고 카스트로는 하노이의 탕 러이 호텔(Thắng Lợi), 베트남-쿠바 병원(Đồng Hới, Quảng Bình) 등 5개의 사회경제적 프로젝트를 세우도록 약 8000만 달러를 기증했다.  

또한 베트남에 현대장비를 지원하고, 도로와 교량에 대한 전문가들과 공병들, 의사와 간호사들을 파견하기 위해 600만 달러 이상을 원조했고, 쯔엉선(Trường Sơn)산맥에 호찌민 루트를 확장하는 군대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1977년에는 제32차 유엔총회에서 중남미 국가들을 동원해 베트남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979년에는 베트남-중국 국경 전쟁이 발발하자 쿠바는 중국의 팽창에 맞서 베트남을 지지하고 베트남에 군대를 파견할 의지까지 피력했다.  

베트남이 금수조치를 받고 있던 1980-1990년 기간 동안 쿠바는 베트남에 의약품, 백신, 식품을 기증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쿠바는 전통적으로 생의학과 보건에 강점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지금 쿠바가 백신생산 강국으로 백신외교를 펼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는 베트남이 쿠바를 돕다...빚까지 탕감 

한편 베트남은 1986년 12월 도이머이 경제개방정책을 선언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쿠바를 돕기 시작했다. 전시에는 쿠바가 베트남을 도왔다면 이제부터는 베트남이 쿠바를 돕게 된 것이다. 

1990년대 구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하고 미국이 쿠바에 금수 조치를 강화했을 때, 베트남은 쿠바를 돕기 위해 쌀, 옷, 학용품, 그리고 많은 중요한 소비재를 보냈다. 이후 베트남은 양국 정부간 위원회를 통해 쿠바에 안정적인 쌀 공급을 유지하고 식량 원조, 기계 설비를 제공함으로 쿠바를 지원하기 위한 다량의 프로젝트를 실시해 오고 있다.

2018년 3월, 응웬 푸 쫑 베트남 총서기장이 아나바의 혁명궁전에서 라울 카스트로 당시 국가평의회 의장과
2018년 3월, 응웬 푸 쫑 베트남 총서기장이 아나바의 혁명궁전에서 라울 카스트로 당시 국가평의회 의장과 회담을 가졌다/출처=베트남통신(TTXVN)

2018년 3월 응웬 푸 쫑(Nguyễn Phú Trọng) 베트남 총서기장의 쿠바 방문시 베트남 정치국은 쿠바가 베트남에 진 채무(1억4370만 달러)를 모두 탕감하기로 결정했고, 동시에 5000톤의 쌀을 쿠바에 기부해 2018~2022년 동안 쿠바에 쌀 공급 및 쌀 생산 지원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양측은 또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경제계약 4건을 포함해 23건의 문서에 서명했고, 양자 무역에는 주로 쌀, 섬유, 신발, 컴퓨터, 전자 제품, 목재 및 커피를 포함시켰다.  

이어서 2014~2019년 중기(中期) 양자 경제 의제를 이행함으로써 베트남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서 쿠바의 두 번째 큰 무역 파트너가 되었으며, 베트남은 쿠바의 식량생산과 식량안보를 단계적으로 보장하는 국가가 되었다.  

여전히 미국의 금수조치에 묶여있는 쿠바를 구조하고자

2014년 쿠바와 미국이 수교를 맺었지만 여전히 금수조치가 해제되지 않은 상태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쿠바에 대한 금수 조치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243개의 정책과 조치를 추가했으며 그 중 40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시행되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한지 거의 8개월이 지났지만 쿠바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바뀌지 않고 있다. 

전에는 카스토로가 자신의 해외순방을 미국과 싸우는 베트남을 위해 각 나라들을 동원하여 베트남 지지 운동을 벌였다면, 지금은 베트남이 외교적으로 고립된 쿠바를 구조하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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